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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114 조   회   2162
이   름   박초풍 날   자   2009년 11월 08일 00시 50분
제   목   사로승구도 전시회
파   일   전시회-설명.bmp (934 KB)
안녕하세요.

지루한 설명이지만...
11월3일-12월31일까지 부산 중구 40계단문화원 6층에서 합니다.
모두 30장의 그림인데...
부산에서 오사카까지는 우리가 요트를 타고 다니는 항로와 같은 뱃길입니다.
216년전의 조선화원의 붓끝으로 본 일본 명승지!

사진은 파일 떠블클릭하면 나옵니다.

내용은 지난주에 게시판에 올린 내용과 같습니다.

박초풍 올림


261년 전 통신사 화원의 붓끝으로 본 일본의 명승지

이제 통신사라는 말은 최소한, 부산과 동경에 걸쳐 당시 통신사들의 사행로(使行路)였던 인근 도시에서는 더 이상 학술 용어가 아닌 일반 명사가 되었다. 그 만큼 ‘통신사’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박제된 채 박물관의 전시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살아있는 현실로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현재로 나왔을 때 그것은 좋은 역사 관광테마가 된다. 그 중에서도 한일(韓日)간 역사적인 사실로서 관광과 접목시키기에 조선통신사만큼 완벽한 소재는 없다. 이는 ‘통신사의 역사’가 어느 한 순간이 아닌 204년(1607-1811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두고 12차례나 연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어느 한 장소가 아닌 한양(서울)에서 동경(에도)까지 수만리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한 두 명의 역사 주역이 아닌 수백명의 사신일행이 참여하였다는 것, 더하여 일본에서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수행하기 위한 별도의 일본인 수행인원이 수천명 참여하고, 이들 통신사절 행렬을 지켜보려고 수백만명의 일본인들이 몇 날을 걸쳐 연도에 늘어섰었다는 사실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거친 뱃길(부산-오사카)과 육로(서울-부산, 오사카-동경)를 이용한 조선통신사의 여로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훌륭한 역사관광 테마이다.

이번 중구청 40계단 문화원에서 전시하는 ‘사로승구도’ 30장의 그림은 1748년 통신사 화원인 ‘소재 이성린’이 부산에서 동경까지의 사로(뱃길)와 승구(명승지)를 각 15장씩으로 표현한 모두 30점이다. 사진이나 비디오가 없던 과거, 이 그림들은 우리에게 좋은 시각적 역사 자료를 제공하므로 오늘날 관광과 접목 시킬 수 있는 최고의 재료이다. 이는, 일본 민속풍경의 대표적인 화가 히로시케(歌川廣重)가 에도시절 오사카에서 동경까지 53개 역참(驛站)의 명승지를 그려 1833년 목판본 그림으로 발간한 동해도53차(東海道五三次)가 당시 일본자국민들의 여행의 기폭제가 되었음은 물론 오늘날에도 일본관광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음을 볼 때 더욱 자명하다. 따라서, 사로승구도 30점은 한.일간 역사탐사 테마를 주제로 해로와 육로가 함께하며, 한국-일본, 부산-동경 구간을 관광 개발과 접목하여 발전시킬 수 있는 주요 테마이다.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261년 전 당시의 그림 속의 풍경과 오늘날의 변화된 모습을 비교 전시함으로서 과거의 모습과 역사를 살펴보며 오늘날 관광과 연계시키는 작업으로 발전되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회의 보충 자료로 각종 ‘조선통신사’ 그림과 부산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1850년 발간된 일본 고전여행지도, 조선인 귀 무덤 판화, 마상재 판화, 및 조선통신사 선박 (1811년) 판화 원본들이 최초로 소개된다.


전시회 자료 준비 및 소장자
조선통신사선박복원회, 전 우홍



사로승구도(槎路勝區圖) 와 소재 이성린 (蘇齋 李聖麟)

261년 전, 1748년 부산에서 일본 에도(江戶/東京)까지 통신사(通信使) 행로의 명승지 30점의 그림을 두 개의 두루마리로 만들어져 서울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각 그림은 35 X 67cm이고, 길이를 합치면 20미터가 넘는다. 그림에는 지명(地名)이 기재되어 있지만 작가의 낙관이나 이름이 없다. 그러나 사행일지(使行日誌)등을 참조하면 1748년(영조24년) 무진년(戊辰年) 화원으로 파견된 소재(蘇齋) 이성린(李聖麟)으로 확인된다.

이성린(1718-1777년: 字/德厚, 號/蘇齊),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圓)으로 활동하다가 1748년 30세에 통신사 화원으로 발탁된다. 소재(蘇齊)는 고달픈 여로(旅路)에서 촉박한 시간과 화구(畵具)의 제약을 받으면서 30점의 경관(景觀)을 연작(連作)으로 완성한 것은 통신사 260년 동안 前後無한 일이다. 이는 사행록에서 문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한 눈에 나타내었고 경관을 잘 표현하여 사진이 없던 당시로서 일본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시각적(視覺的)인 기록물이다. 또한 통상적인 여행 화첩은 대개 손바닥에 둘 수 있는 크기였음을 생각할 때 그의 화폭은 대형(35 X 67cm) 여행길에서도 그렇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소재(蘇齋)가 그만큼 성실하였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목에서 사로(槎路)는 항해하는 뱃길(海路) 즉, 일본 여행을 뜻하고, 승구(勝區)란 빼어난 경관(景觀)을 뜻한다. 그림 해설은 사행을 함께했던 종사관, 조명채(1700-1763)의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을 참조하여 시간과 장소 및 각 그림 설명에 인용하였다.

模寫作品 30장은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사진을 제공받아, 중국 안휘성(安徽省) 위롱닌 (吳榮林) 화백에 의뢰하여 완성되었다.

여정(旅程)은 1747년(영조23년) 3월에 임명받고 11월에 서울(한양)을 출발하여, 1948년 2월16일에 475명의 사신일행은 부산을 출항하여 5월21일에 동경(江戶), 6월1일 국서를 전달하고, 6월13일 에도를 떠나 회정(回程) 길에 오른다. 윤7월12일 부산에 도착하고, 윤7월30일 한양으로 복명한다. 그 동안 일본에서 많은 문화를 전달하고 배우며 또한 길고 힘들었던 10개월의 여행이 끝난다.

조선통신사선박복원추진회
전 우홍(박초풍) 011-9543-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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