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좋아하는 취미 생활에 빠져들면 정신을 못 차리게 마련이다. 더욱 바다와 요트라는 멋진 매력에 빠져 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 할 수 없겠지만... 가족에게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서 토,일요일 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사무실 근무 뒤에는 요트장으로 제2의 출근을 하여 흰 돛과 소금 냄새, 먼바다 바람에 묻어 오는 항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이방인(異邦人) 선장을 만나 그들의 천일야화(千一夜話)를 들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러게 하자니 허구한 날 늦게 들어와 가족들의 불만이 여간 한 것이 아니다. 어제는 외국 요트가 입항해서, 오늘은 누구네 배 진수식, 내일은 누구네 배의 수리하고, 누구네 요트 새 돛을 달고, 그 다음날은 바람이 불어서, 그리고 다음날은 비가 와서, 태풍이 부니, 무슨 행사가 있으니, 요트 모임이 있으니 등등. 요트 마리나 에서 혹은 일상 생활에서 일어 날 수 있는 모든 핑계를 요트 장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로 사용해 보지 않은 것이 없다. 마누라의 불평은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흘려 버렸지만, 딸 녀석(善海)이 아빠는 자기와 함께 놀아 주지 않고, 매일 요트장에만 간다는 비판에는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이제 딸에게 꼭 요트장에 나가야 할 명분도 핑계도 사라져 갈 무렵, 딸 녀석이 꼼짝 못 할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집, 엄밀히 말해서 딸에의 애완견 윈디(Windy)! 조그마한 마르티스 種子인 그 녀석은 나의 구세주였다.

사실 나는 집안에서 개를 키우는 것을 반대하였으나 몇 년에 거친 어린 딸의 간곡한 소망이라 강아지를 키우도록 허락하면서 개의 모든 뒷바라지는 딸 녀석의 책임이라고 분명히 해두었다. 그러나 딸의 우선권(優先權)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강아지의 이름을 “윈디(Windy)"라고 지어주었다. 항상 바람이 적당히 불어 돛배가 잘 달리게(帆走/Sailing) 해달라는 의미에서 윈디라고 붙였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이 개똥 치우기와 산책시키는 일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 집에서도 결국은 개 수발의 절반은 내가 하는 샘이었다. 그래서 퇴근하면서 현관문을 열자말자 딸에게

오늘 Windy 산책 시켰니? .....!!
개똥 치웠니? .....!!
그럼 내가 시키고 온다. 너도 좋겠지? .....!!

(이발한 강아지 시절의 윈디)

그리하여 집에서 합법적이고 타당한 동의를 얻어 Windy를 데리고 요트장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러나 막상 몸은 요트장에 왔으나 이제는 개가 걸림돌이 되었다. 아직 많은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개를 터부시한다. 내 배는 몰라도 친구 배에는 개를 데리고 갈 수 없는 노릇이다. 부두계주(繫柱)에 배를 묶어 놓듯이 개 고리 걸어 두고서, 중늙은이 온 마을을 다니면서 쓸 때 없는 참견하듯 이 배 저 배를 기웃거리며 잡담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는 동안 한번은 윈디가 바닷물에 빠지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더워서 혓바닥이 마포자락처럼 길게 나와서 헉헉거리고, 겨울에는 추워서 부들부들 떨곤 하였지만 개 주제에 요트장에 나온 것만 해도 영광인줄 알아라!

그리고 남들은 내 사정을 모르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개를 데리고 배를 타는 주책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개는 자기 이름으로 된 26‘ 돛배 Windy호의 선주이며, 제법 바다에 익숙한 개라서 범주(Sailing) 할 때면 선수 쪽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의 방향도 아는 듯 머리를 바람으로 향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비행기 조정사의 머플러처럼 그 개는 앞 갑판에 서서 하늘을 향해 희고 긴 털을 휘날리었고, 한편으로는 땅 냄새를 맡을 줄 아는 듯이 육지를 향하여 코를 벌렁거리기도 하였다.

지금은 딸년이 이곳에 없어 Windy가 없어도 마음대로 요트장에 갈 수 있고, 선천적으로 개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Windy는 딸에의 친구 집에 위탁하였다. 이제 와서 혼자 한가한 항해를 할 때면 그녀석이 서있던 빈 공간을 바라보면 문득문득 윈디가 보고 싶고 또한 동료의식이 느껴진다. 한 번은 그 집에서 전화가 와서 윈디가 티코만 보면은 낑낑거리면서 차 주위를 맴돈다고 이상하다고 하였다. 아무렴 그 개는 신선한 바람과 육지 방향을 아는 총명한 개인데 하물며 옛 주인의 차 종류를 모를까? 그 녀석은 요트장에서 온갖 나의 구박과 장시간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였겠지만 그래도 티코를 타고서 요트장을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던가 보다. 그리고 5개월 뒤에 그 녀석을 만났을 때는 나의 체취를 맡고서 아예 숨이 넘어 가는 듯, 뺑뺑이를 돌면서 기뻐하던 녀석의 모습을 보니 내가 지난날 좀 심했었나?! 이제 다시 그녀석이 그리워진다.

추신: 많은 사람들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한다. 그러나 나의 이명(異名)에 대하여 고백해야할 것이 있다. 윈디 전(Windy Chon), 외국인이 부르는 나의 영어식 이름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부산에 입항하는 외국 요트들의 무료 입출항 수속과 각종 편의를 제공을 외국요트봉사회를 이끄는 동안 자연스럽게 사발통문으로 외국 요트인들 사이에 부산에 가면 윈디를 찾으라고 알려졌다. 즉 윈디는 우리 집 개 이름이며 또한 나의 배 이름이기도하다. 고로 나는... 그러나 여기서 삼단논법(三段論法)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윈디호 선장, 윈디 전(Windy Chon)

(배의 생활견(生活犬) 소개)

1998년 7월 22일에 부산 입항하여 10월 22일에 출항한 미국 요트 Mahdi 호의 Rod & Becky와 함께 여행을 하던 10살배기 개, 이 종류의 개는 선박의 생활견(生活犬)으로 옛날부터 해양소설 혹은 요트맨 들의 바다 手記에서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물은 처음 보았고 모습이 마치 새끼 곰을 연상하면 된다. 이 개는 원래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운하에 운항하는 거룻배(Barge)에 살면서 배를 지키는 개다.

동물검역소에 걸린 도감(圖鑑)에는 Schipperkie 종으로 1600년경부터 벨기에에서는 “작은선장/Little Captai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거룻배의 마스코트 혹은 망보는 개(見視犬)로 키워졌다. 미국에 알려지기는 1905년이며, 보통 몸무게 7 Kg, 키가 30cm, 털은 뻣뻣하고 두텁고 검으며 광택이 나고, 꼬리는 자연적으로 퇴화되어 보이지 않는다.
2002년 3월 30일, 이제 다시 윈디의 마지막 글을 써야겠다. 그 녀석이 정확히 우리 집에 언제
입주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딸아이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 지금은 고등학교 3학년이니 10년째인가 보다. 그사이에 요트장의 요트들은 많이 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윈디호는 매년 1피트씩 자라서
지금은 33피트인 초록물고기로 바뀌었고, 광안大橋는 10년 공사에 마무리 단계로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딸아이는 철부지에서 이제 의젓한 숙녀로 변신했다. 윈디는 나의 구박을 받으면서도 요트장으로 산책 가서 뛰어 노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그렇게 10년을 같이 살았고 정이든 개였다.

그 녀석은 강아지 때는 건너편 부두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며, 거리 감각이 없어 바닷물에 풍덩 빠지던 녀석이 이제는 요트장의 배이름을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4번 부두 15번 선석에 있는 초록물고기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요트장 광장에 풀어놓으면 제 혼자 놀다가 대략 한시간마다 배로 돌아와 눈 도장을 찍고서 다시 놀다 오곤 하였다. 2-3년 전에는 행동반경이 옛 배인 윈디호와 이삭호가 있던 요트장의 동쪽 반경이었고, 근래에는 초록물고기가 4부두에 위치하고 이삭호가 먼 여행을 떠나고 나서부터는 그 녀석의 행동반경이 요트장 전 구역으로 확대되어 집에 갈 시간에도 돌아오지 않아 요트장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고 다닌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다행히 이삭호에서 주고 간 자전거가 있어 구석구석 다니기는 수월했다. 아니 이제 생각하니 그 녀석은 자전거의 앞 바구니에 타고 싶어 나와 숨바꼭질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유난히 앞자리를 좋아했다. 윈디호의 선수에서도 신선한 바람을 받으며 코를 벌렁거리더니 자전거 앞 바구니에서도 스쳐 가는 바람을 좋아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제 나이에 너무 뛰어다녀 무리했는지 코를 골면서 잠을 떨어진다.

이제 비릇 나이 때문에 이빨도 거의 모두 빠졌지만 애완견으로서는 아주 건강했다. 한번은 동물병원에서 노인 개를 너무 운동시키지 마라는 경고를 받기도 하였다. 너무 외출을 자주해서인지 한나절 나가지 않으면 낑낑거리고 난리이다. 윈디는 요트장의 요트이름은 아직 반쯤 밖에 외우지 못했겠지만 나의 옷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모자를 쓰면은 요트장에 가게되고 그러면 신나게 뛰어 놀게되고, 이때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기쁨에 차서 숨이 넘어 가도록 뺑뺑이를 돈다. 어떤 옷은 그냥 아파트 화단에서 5분간 외출이고, 무슨 신발을 신으면 슈퍼마켓에 가고 자기는 차안에서 따분하게 기다려야 하고, 그 녀석이 제일 싫어하는 옷은 나의 잠옷이다. 이것은 그 녀석이 외출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어두어야 하는 신호이고 꼬리를 내리고 제 방석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측은해 다시 잠바를 덧입고 산책을 나가면 그 녀석의 표정은 그야 말로 성은이 망극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하는 모습을 역력히 읽을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예고가 있는 법, 윈디가 사라진 날도 몇 번의 예고가 있었다. 이틀 전 왠지 그 녀석과 사진을 찍어 두고 싶어, 혹은 이삭호에 보내기 위해 이삭호 자전거의 바구니에 넣고 요트장을 배경으로 한 컷 찍어 둔 것이 지금 생각하니 녀석과 이별의 전조였고, 당일 날에도 어느 때처럼 요트장에 풀어놓았고 어떤 여자 분이 윈디 목걸이의 전화번호를 보고서 개를 보호하고 있다고 처에게 전화하였고, 또 몇 시간 후에 다른 남자로부터 사무실에 있는 나에게 같은 내용의 전화가 왔다. 그러면 평소대로 위치를 확인하고 요트장 이라면(아직 한번도 요트장 밖을 나간 적이 없었다) 고맙지만 그곳에 그냥 놓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그 날 3번째 사람은 윈디 목걸이 전화번호를 보고서도 전화를 주지 않았다. 이것이 전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래에는 이런 전화가 없었고, 또한 하루에 두 번 왔던 적은 더욱 없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봄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온 딸에게는 원래 개가 늙으면 주인의 부담을 줄이려고 자신의 발로 집을 나간다고 옛날 어른들의 말을 해주었고, 또한 우리 집보다 좋은 집으로 갔을 것이라고 되

(윈디가 사라지기 이틀전의 모습과
Isaac호의 자전거)

지도 않은 위로를 해보지만... 이제 최초로 요트장 밖에서 윈디를 보았다는 전화가 오기를 열흘째 간절히 바라고 있다.

또한 하루에 두 번 왔던 적은 더욱 없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봄방학을 맞이하여 집으로 돌아온 딸에게는 원래 개가 늙으면 주인의 부담을 줄이려고 자신의 발로 집을 나간다고 옛날 어른들의 말을 해주었고, 또한 우리 집보다 좋은 집으로 갔을 것이라고 되지도 않은 위로를 해보지만... 이제 최초로 요트장 밖에서 윈디를 보았다는 전화가 오기를 열흘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윈디가 강아지 적에 딸에게 왜? 개를 키우니! 딸은 강아지에 목줄을 하여 산책하는 재미로 키운다고 했다. 나도 그 말처럼 이삭호가 바구니 자전거를 주고 간 뒤로부터는 퇴근하여 윈디를
바구니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함께 요트장으로 가는 것이 혹시 나의 재미가 아닌가, 마음속으로 생각해보았지만 아니야 의무를 할 뿐이야! 사실 한국에서 오십 줄에 들어가는 남자가 자전거에 강아지를 데우고 다니는 것은 정상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래도 남이 처다 보건 말건 나는 집에 키우는 개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다. 간혹 신호등을 기다릴 때 여자아이들이 야! 강아지가
자전거 탔다 라고 할 때, 나는 그 아이들 얼굴에서 딸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지 윈디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윈디는 그저 바다의 경험이 많은 딸아이의 개일 뿐이다. 아! 그러면서도 그 녀석은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내 다리 밑을 떠나지 않았고, 가족 중에 누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현관문 앞에서 코를 박고 쭉 친다. 그리고 처음 요트를 타는 사람과 세일링 할 때면 균형은 이렇게 잡는 법이야 하고 갑판을 네발로 달리며 알려 주던 너의 모습, 윈디야!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이제 열흘이 지났다. 그 동안 거리 곳곳에 너를 찾는 전단과 요트장 구석
구석에 너의 이름과 너와 나의 신호인 휘 바람을 불어 보았지만 어느 때처럼 나무 밑에서 혹은 건물 모퉁이에서 귀가 시간에 늦은 악동의 달음박질 모습으로 달려나오는 것을 볼 수 없구나. 그게 조금 슬프다. 윈디야! 난 정말 이제 내가 너에게 해야할 책임이 없어져 좋다. 잘 가, 윈디야! 그러나 어젠가 요트장 탑 뒤에서 아니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배에 눈 도장을 찍으러 오는 너를 꼭 만나고 싶다. 어제 저녁때는 어떤 아주머니가 너를 찾는 방(房)을 보고 전화하였다 기에 온 식구가 긴장을 했었는데... 아주머니 왈 대신 강아지를 우리 집에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어떡하니 우리가 애완견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너와 정이 들어서인데... 그 아주머니 제안은 고맙지만 이제 네가 아니라면 우리 집에는 어떤 강아지도 들여놓을 수 없다. 그리고 만우절에는 딸아이가 멋진 거짓말을 하였으나 한 눈에 알아 차렸지만 정작 어린 조카가 너(윈디)를 보았다는 말에 한 점의 의심도 없이 조카 녀석에서 어디서라는 말을 얼마나 크게 외쳤던지 식당의 모든 사람이 처다 보았단다. 좀처럼 남에게 속지 않는 성격인데, 조카의 거짓말에 넘어가다니... 그래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운전하면서 너 생각이 났고 O&O라는 말을 생각해 냈다. You are my only and one (O&O) dog. 이 말은 미국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들으면 화를 내겠다. 그곳에서는 자기 애인을 말 할 때 O&O라고 부르지.

마치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애완견을 무진장 좋아해서 강아지를 끼고 사는 것처럼 보여졌을지 모르지만, 난 그저 집에서 키우는 개에 대한 주인의 의무로서 산책을 시켜야하는 책임을 다 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열흘이 지난 오늘, 10년이란 시간의 정 때문인지 아니면 네가 나의 배 작은 선원으로서 동료의식 때문이지 너무나 허전함을 숨길 수 없다.

윈디, 너의 이름처럼

바람 되어 나의 배를 밀어다오 영원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