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제주도에서 처음 요트 입문하였던 스나이프 (Snipe), 강남조선에서 만들었던 초기의 레이스 보트입니다.
당시 레이스는 1인-OK딩기와 2인-스나이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는 제주에 경험자가 없어 솔직히 혼자서
바람 잡는데 4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푸른 바다 흰 돛의 세일링도 좋았지만 그보다 맑은 바다와 해저 풍경에 도취하였었고 낭만적인 바다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 배는 제주대학 재학 중 4년 동안 관리하였던 배.


박초풍의 바다이야기의 씨앗이며 나의 가족사(家族史)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1975년 여름 해수욕장에서)

(해군 경비정 가 118정 겨울에는
얼음에 달아 붙곤 하지요)

 
(이제 흰모자는 흰머리 카락으로 변해...)
1979년 아(我) 해군의 상륙함(거문함) 갑판사관(소위)으로 한국 많은 섬들을 순례하였고1980년 인천에서 수도권 경비정 정장(중위)로 근무로 2년간 승선 생활후 1981년 2월 전역.

(전기도 물도 없는 숲 속에서 배 제작에 나선 철부지,
나중에 친구에 의해 조선소로 옮겨져 완성)
(내가 만든 딩기/포미의 세일링-김녕 해수욕장 그리고 모타 보트의 질주-함덕 해수욕장)
제주도의 일주도로를 다니면서 느낀 것은 파란 바다 위에 흰 돛단배가 떠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981년 봄, 해군을 제대하면서 그 생각을 실천하고자 제주모험이라는 간판으로
주로 요트운항을 목적에 두고, 요트제작과 해양레저사업을 운영. 딩기/6척, 모터보트/1척, 낚시배/1척, 패들보드/15대 제작하였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제주도 유선업(遊船業)허가 1호로 받음. 1982년에 첫 요트 클럽을 만들어 주로 김녕해수욕장에서 훈련했음. 제주모험은 대단한 선견지명이었으나 너무 빨리 실천하여 그야말로 사업은 모험으로 끝났음. 그러나 아름다운 제주의 바다와 풍광 그리고 그 경험이 생활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부인 못함.

제주모험을 정리하고 남은 배(중고 구입), 코카콜라 의자에 윈도도 없는 배의 모습만큼 엔진에도 문제가 많았던 보트.그러나 선장 모자만큼은 그럴 듯 하네요.

부산 요트장 완성되기 전에 배는 용당 동명합판 부두와 남천동 어촌계 그리고 수영강에 계류함.
이때 남천동 바다는 딸에게 주고, 광안리바다는 내가 가졌었지요.
(어느 봄날...남천동 어촌 포구, 딸의 바다에서)

 



(광안리 보트 조합의 함대 50척에서
동백호는 어디 있나?)
(오나시스 전의 모습)
 
제주에서 부산으로 이사 후 바닷가를 기웃거리다가 광안리 유람선에 흥미. 2년을 교섭한 후 드디어 정식 조합원 즉, 동백호 5척의 선주가 됨. 그래서 일간에는 "오나시스 전"이라는 별명이.... 사실은 이곳에서는 "동백"이라는 택호를 쓰고있음. 광안리 보트조합은 1958년 유람선이 시작되었으니 광안리 주변(수영구)에서 제일 오래된 기업체가 아닐까? 지금은 학생 알바를 두었지만 1997년까지 선주는 이런 모습(사진)으로 돈을 벌어 요트 취미생활을 하였습니다.
물론 주말에만 일을 하였는데 이때 "익상편"이라는 직업병을 얻음,
원인: 바다에서 자외선과 바람으로 인하여 눈동자에 흰 점이 발생. 여러분 바닷가에서는 익상편을 방지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사용해야합
니다.

낙동강 전구간을 탐사하려고 구입했던 보트입니다. 겨우 경북봉화 석포에서 10km 탐사,늦가을이라 강바닥에 수량이 없어 거의 끌고 다님.

그때 만든 낙동강 자료는 아직도 책상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아마도 래프팅의 시조가 아닌가?

(90년 11월 낙동강 상류 봉화 석포부근)

광안리보트조합의 목선(木船)을
FRP선으로 개량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선형은 목선이 좋다고 하여
목선 형태로 만들었으나.....
몰드와 배 제작을 셋집 옥상에서 만들어 주인과 이웃집 눈치를 보느라
가자미눈이 되었다는 전설이 오늘도 광안리 앞 바다에 떠돌고 있다.

(옥상에서 제작한
목선형 FRP 광안리 보트 시운전)

(수영만에서의 Full Sail)
(어느 여름날 전국에서 모인 질녀들과 함께)
처음 가져본 Day Cruiser(21피트). 사실 자가용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중고 요트를 구입하였고, 3년간 바다에서 즐거운 기억들을 남겨주었다. 88년 20피트로 태평양을 횡단한
김원일씨의 밍-코리아 호와 같은 모델, 그의 배는 Transom(뒤 판)을 1피트 절단하여 20'. ※Kim's Sail 제작: 21피트, 침대 4인, 선외기 25마력
(26피트 요트라면 정말 새 인생에
더 이상의 배가 없는 줄 알았다)

(게을러서 Jib Sail도 펴지 않고)
돌핀호 관리비(매달 10만원?) 부담으로 안동호수에 인계하고 일년 동안 배가 없어 다시
친구들과 모금하여 구입한 배. 충무까지 황천(?)항해 중 라더와 센터보트에 큰 손상 입음. 가족과 친구들에게 바다와 Sailing이 무엇인지 알려준 배. 이제 더 이상 큰배가 필요
없다고 만족하였던 배였으나... 다음 배에는 그야말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큰배로 교체.
※맥그리거 26피트: 침대 5명, 선외기 8마력, 워터 바라스트-센터 보드-트레일러용

(완도 장보고 행사에 무역선으로 참가 -
선명도 바꿔 버리는군요)

(앞 돛대에서 본 갑판 수리 정리 작업)
MBC에서 신안 유물선을 복원하여 역사 다큐멘터리(중국 영파-한국 목포-일본 오사카)
제작 후 3년 간 방치된 배를 인수하여 청소년 범선 체험관으로 개조. 부산에서 완도 2회, 속초(국제 관광 엑스포) 왕복 항해.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던 배이며 시야를 크게 만들어 준 배. 제주도로 시집감, 현재 타인의 소유로 부산 요트장 계류 중임
※중국 복건성 건조 31미터/245마력, 5낫트, MBC 다큐멘터리 제작 때 50여명 승선 항해

(대변항 초록 물고기-괘지나-인내호 계류)
700년 전의 약속호를 보내고 나서 일본 오사카에서 중고를 인수 부산까지 직접 항해하여 수입 통관 완료. 내부 수리를 거쳐 항해(Sailing)는 물론 손님 접대, 별장, 사무실로
사용 중. 2001년 8월 대마도 항해. ※피터슨/주거시설 완비/침대 6개/볼보 24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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